
아이들을 키우면서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뜰 때와 밤에 잠들 때만큼은 아이들의 기분이 좋았으면 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 자라면서 속상한 일도 겪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도 만나야 한다. 엄마인 나 역시 늘 다정할 수만은 없다. 해야 할 일을 재촉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도 있다.
그래도 하루의 시작과 끝은 조금 다르게 지켜주고 싶었다. 눈을 떴을 때 자신을 반기는 얼굴이 있고, 잠들기 전에는 마음 놓고 안길 품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꼈으면 했다.
거창한 육아 원칙을 세우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아침에는 눈을 맞추고 웃어주었고, 밤에는 책을 읽고 함께 뒹굴었다. 그렇게 반복한 시간이 쌓여 우리 집의 습관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웃는 아이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우리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웃는다며, 잘 키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잘 키웠다는 말도 감사했지만, 내 마음에 더 오래 남은 것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웃는다는 부분이었다. 매일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라 익숙했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특별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우리가 함께 맞아온 아침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부터 잠에서 깨면 먼저 눈을 맞추려고 했다. 깨어난 얼굴을 바라보고, 몸을 만져주고, 품에 안고 웃어주었다. 아이가 눈을 떴다는 사실을 반가워하는 마음을 얼굴과 손길로 전하고 싶었다.
아직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던 때에도 그것은 할 수 있었다. 잘 잤는지 길게 묻지 않아도,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눈앞의 아이를 보고 웃으면 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아침에 웃는 이유를 전부 내 행동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타고난 성격도 있을 것이고, 그날의 몸 상태와 기분도 다를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눈을 뜨는 순간마다 내가 어떤 표정으로 곁에 있었는지는 기억한다. 그 시간만큼은 반가움을 먼저 건네려고 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침에는 챙길 일이 많아진다. 시간에 맞춰 준비해야 하고, 빠뜨린 것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얼굴보다 시계를 먼저 보게 되기 쉽다.
그래서 내게도 이 작은 기준이 필요하다. 해야 할 말을 꺼내기 전에 아이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는 것. 아침의 첫 표정을 재촉으로만 채우지 않는 것. 내가 지키고 싶은 아침은 그 정도의 짧은 틈에서 시작된다.
할머니의 말씀은 내가 중요하게 여겨온 시간이 아이들의 일상 속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았는지 잠깐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아이들이 웃으며 깨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기뻤다.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되던 잠자리 시간
밤에는 우리만의 잠자리 의식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골라 가지고 왔다. 두 아이가 고른 책을 하나씩 읽어주고 나면 불을 껐다. 그렇다고 곧바로 잠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 놀이를 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함께 뒹굴거리다 보면 어느새 잠들 시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작은 몫이 있었다. 오늘 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일이었다. 엄마가 읽히고 싶은 책보다 아이가 지금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잠자리로 들어왔다.
책을 읽어주는 동안에는 같은 이야기를 함께 따라갔다. 책을 덮은 뒤에는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이어졌다. 잠자리는 하루의 할 일을 마친 뒤 잠깐 남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과 따로 보내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잠들기 전에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 곁에 누워 있다가 잠든 것을 보고서야 자리를 떴다. 그 시절의 밤에는 엄마가 아직 옆에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잠이 들 때까지 함께 있었으니까.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익숙한 방식이었다. 언제까지 곁에 있어야 하는지 날짜를 정해두기보다, 그렇게 보내는 밤을 이어갔다.
이후 이사하면서 아이들에게 각자의 방과 침대가 생겼다. 아이들은 자기 침대가 생기자 각자 방으로 가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잠들었다. 오랫동안 엄마와 함께 잠들던 아이들이었는데, 새로운 공간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혹시 혼자 있는 것이 무섭거나 어색하지 않을까 싶어 새 방에서도 잠들기 전에 책을 함께 읽어주곤 했다. 어느새 그림이 많던 책 대신 글로만 채워진 책도 읽게 되었다. 아이들의 잠자리가 달라지는 동안, 함께 읽는 시간은 익숙한 연결점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의 경험만으로 혼자 자는 시기를 정답처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아이들이 각자의 침대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면서, 곁에 머무는 시간의 끝을 내가 미리 서둘러 정할 필요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잠자리를 받아들였고, 나는 달라진 방식으로 저녁 인사를 건넸다.
각자의 방에서 자도, 마지막 인사는 품 안에서
이제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을 향해 가고 있다.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고 잠들 때까지 함께 있어주는 날은 드물어졌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인데 엄마가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이야기의 내용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한자리에 머물며 같은 대목을 함께 지나가는 시간도 좋은 것이 아닐까.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아이들은 자기 전에 꼭 엄마를 안고 뽀뽀를 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어릴 때는 내가 아이들을 안아주며 잠자리를 마련했다면, 이제는 아이들도 자신에게 필요한 마지막 인사를 알고 찾아온다. 각자 침대에서 자더라도 하루의 끝에는 한번 품에 안겼다가 간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면 아이들의 마음이 따뜻해진 채로 잠에 드는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속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잠들기 전 나누는 포옹에는 서로 서두르지 않고 가까이 있는 시간이 담겨 있다. 나 역시 아이를 안고 나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아이들의 하루에는 내가 모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학교에서 누구와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 무엇 때문에 웃었고 무엇이 조금 속상했는지 모두 알 수는 없다. 자랄수록 엄마에게 설명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도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잠들기 전 포옹에는 하루를 빠짐없이 보고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되고, 아무 말 없이 안겨 있어도 된다. 그날의 일을 전부 알지 못해도 아이를 가까이 안아줄 수는 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아이가 언제나 밝은 표정을 짓는 일이 아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아침에는 반가운 얼굴을 만나고, 밤에는 편안하게 몸을 기댈 수 있었으면 한다. 웃음이 바로 나오지 않는 날에도 이 습관이 아이에게 부담 없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아이들은 엄마를 안고 뽀뽀를 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인사인데,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 짧은 시간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내일 아침에도 아이들이 눈을 뜨면 얼굴을 보고 웃어주려 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내가 먼저 건넬 수 있는 반가움이 있으니까.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을 바라보며, 오늘도 함께 아침을 맞게 된 기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