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육에 있어 가장 큰 키워드는 '문해력'이 아닐까 싶다.
언어 과목 뿐 아니라, 수학, 과학도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하여
요즘 엄마들은 문해력을 키우는데 열심을 쏟는다.
그리고 그 문해력의 기본은 독서에 있기에, 최근 아이들의 독서를 위해 부모들은 많이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그런데 독서를 하는 것에 있어서도 부모들은 저마다의 고민이 있다.
책을 안 읽어서, 책을 편식해서, 만화책만 읽어서... 등등
나의 경우엔, 아이가 너무 한가지 책만 읽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눈뜨면 제일 먼저 손에 집는 것이 책이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독서 관련 퀴즈는 무조건 다 맞춰서 담임선생님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정말 아무도 못맞출거라는 확신으로 문제를 냈는데 우리아이가 덜컥 맞추자 너무 놀라셨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무렵에는《빨간 머리 앤》8권짜리 완역본 전집에 푹 빠졌고, 《나니아 연대기》 전권을 이틀만에 읽어내며 꽤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 엄마로서 적지 않게 뿌듯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었다.
학습에는 크게 간섭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독서력이 있는 아이는 결국 자기 힘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

그런데 4학년이 되면서, 아이의 독서에 대해 조금씩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어 시험을 생각보다 잘 보지 못했고, 수학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아이는 분명 책을 누구보다 많이 읽는데,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니? 머리속이 좀 복잡해 졌다.
아이가 학습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책을 너무 스토리 위주로만 읽는건 아닌지,
뭔가 별도의 훈련을 시켜야 하는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 아이는 해리포터에 빠져있었다.
3년째 반복해서 읽고 있는 중이었다.
2학년 때부터 해리포터 전권을 1년에 두 번씩 읽고 있는데, 4학년이 되니 뭔가 더 몰입하고 빠져나오질 못하는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책만 보려고 했고, 집에서도 숙제를 하면서도 몰래몰래 책을 보느라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물론 책을 읽는 것은 천번 만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불안으로인한 화가 쌓이기 시작했다.
'또 책만 보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책보다 더 좋은 친구도, 더 좋은 선생도 없다고 믿어 온 사람인데
아직 초등학생밖에 안된 아이가 책만 본다고 화가 나있는 나를 보며 놀랍기도 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다 어느날 받아온 단원평가 성적표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한계에 달했다.
혹시 아이에게 해리포터가 독서가 아니라 피난처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어려운 공부를 마주하면 해리포터.
조금 부담스러운 과제가 생기면 해리포터.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 이미 익숙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혼자 추측하기 시작했다.
결국 '해리포터 금지령'을 내렸다
그렇게 한달을 나 스스로도 내적 갈등에 시달리다 결국 결정을 내렸다.
'해리포터 조건부 금지'
주말과 방학에는 얼마든지 읽어도 좋지만, 평일만큼은 해야할 일과를 우선으로 하고 독서는 다른 책을 읽기로.
아이는 금단 증상이라도 있는 듯 매우 힘들어 했다.
사실 말은 단호하게 했지만 사실 가장 괴로웠던 사람은 나였다.
아이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누구보다 책의 유익함과 즐거움이 뭔지 잘 아는 나인데,
너무 근시안적인 눈으로 아이의 가장 큰 즐거움을 빼앗은 건 아닌지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나친 기대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 나아가, 이런 불안감까지 들고 있었다.
'이러다가 아이가 책 자체를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 오히려 독서의 즐거움을 망쳐 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아니 좋은 거다.
그래서 이 결정이 맞는 것인지, 눈에 보이는 아웃풋 없이 흘러가는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인지 요즘 고민이 깊다.
무엇보다 나는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아이의 성장을 돕겠다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되는 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금지령 가져온 의외의 효과..?
그런데 첫날, 조금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해리포터를 읽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이가 숙제를 스스로 챙겨서 평소보다 훨씬 일찍 끝낸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내심 안도했다.
아이가 단순히 공부를 피하려고 해리포터를 읽었던 것만은 아니었구나.
정말 그 책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싶었다.
의외의 효과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사실 아직도 내가 내린 결정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어린시절 부모의 결정이, 그 매 순간의 결정이 아이의 미래를 쌓아 가는 벽돌 한장한장이 될거라는 생각에
매일 갈팡질팡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는것 같다.
그래도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 싶다. .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해리포터를 둘러싸고 씨름했던 이 시간들조차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 과정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