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레고 조립을 좋아했다. 여덟 살 무렵부터 16+, 18+ 표시가 있는 성인용 제품에도 관심을 보였고, 설명서를 보며 하나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완성된 제품이 좋아서 레고를 만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니 결과보다 조립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아이였다. 필요한 부품을 찾고, 설명서 속 그림을 실제 구조로 옮기며, 조금씩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열한 살이 된 지금은 6,020피스로 구성된 레고 해리포터 호그와트성 71043을 완성했다. 피스가 많은 제품인 만큼 짧은 시간에 끝내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조립하며 끝까지 이어갔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레고와 같은 조립 활동에 관심이 많구나’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설명서를 보고 만드는 활동을 충분히 경험한 아이에게는 그다음 어떤 활동을 제안해 줄 수 있을까?”
단순히 더 크고 비싼 제품을 사주기보다는 아이의 관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레고를 좋아하고 고난도 세트까지 꾸준히 만드는 아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다음 단계를 정리해 봤다.
1. 더 큰 성취감을 원한다면 초대형 레고 세트
아이가 복잡한 설명서를 따라 오랜 시간 조립하는 과정을 좋아하고, 완성품을 전시하며 성취감을 느낀다면 더 큰 규모의 세트에 도전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초대형 레고 제품은 다음과 같다.
- 에펠탑 10307: 10,001피스, 완성 높이 약 149cm
- 타이타닉 10294: 9,090피스, 완성 길이 약 135cm
- 스타워즈 밀레니엄 팔콘 75192: 7,541피스
레고 공식 자료에 따르면 에펠탑은 10,001피스로 구성된 초대형 모델이며, 타이타닉은 9,090피스로 만들어진 1대 200 축척 모델이다. 밀레니엄 팔콘 역시 7,541피스로 구성된 고난도 세트다.
하지만 6,000피스 세트를 완성했다고 해서 반드시 더 많은 피스의 제품으로 넘어갈 필요는 없다. 대형 제품에는 같은 구조를 반복해서 조립하는 구간도 많기 때문이다. 아이가 반복적인 조립 과정 자체를 즐기는지, 아니면 새로운 구조를 발견할 때 더 흥미를 느끼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
가격뿐 아니라 완성품을 놓을 공간도 고려해야 한다. 에펠탑처럼 높이가 1m를 훌쩍 넘거나 타이타닉처럼 길이가 긴 제품은 조립보다 완성 후 보관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참고: 레고 공식 초대형 세트 안내
2. 움직이는 구조에 관심이 많다면 레고 테크닉
일반 레고가 건물이나 캐릭터의 외형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면, 레고 테크닉은 내부의 움직임과 작동 구조를 구현하는 재미가 크다.
기어와 축, 피스톤, 서스펜션, 조향 장치 등을 연결해 자동차나 중장비가 실제로 움직이는 원리를 살펴볼 수 있다. 조립 순서가 잘못되거나 축 하나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면 완성 후 기어가 돌아가지 않을 수 있어 세밀한 확인도 필요하다.
특히 다음과 같은 성향의 아이에게 잘 맞을 수 있다.
- 자동차나 중장비를 좋아하는 아이
- 완성된 외관보다 내부 작동 원리에 관심이 많은 아이
-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아 다시 조립하는 것을 즐기는 아이
- 기어가 맞물려 움직이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는 아이
다만 테크닉을 조립한다고 해서 기계공학이나 물리 원리를 저절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조립한 뒤 기어의 크기나 위치를 바꿔보거나, 움직임이 달라지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볼 때 더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기어를 더 큰 것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바퀴 두 개가 왜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일까?”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다. 정답을 바로 알려주기보다 아이가 직접 바꾸고 확인하도록 두면 조립 활동이 작은 실험으로 확장된다.
3. 설명서를 넘어 창작하고 싶다면 MOC
레고를 잘 조립하는 능력과 자신만의 작품을 설계하는 능력은 조금 다르다.
설명서를 정확하게 따라 만드는 데 익숙한 아이라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만들어보라고 하면 막막해할 수 있다. 이럴 때는 기존 세트의 브릭으로 다른 작품을 만드는 ‘얼터너티브 빌드’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리브리커블로 새로운 도면 찾아보기
리브리커블(Rebrickable)은 자신이 보유한 레고 세트나 브릭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을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다.
특히 하나의 정식 레고 세트에 포함된 부품만으로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드는 대안 모델을 검색할 수 있다. 한 번 완성하고 전시해 두었던 레고를 해체해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보고 싶을 때 유용하다.
처음에는 다른 창작자가 만든 도면을 따라 조립하고, 이후에는 색상이나 내부 구조를 바꿔보는 방식으로 난도를 높일 수 있다. 전체 작품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방 하나를 추가하거나 자동차의 앞부분만 바꿔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
BrickLink Studio로 디지털 레고 설계하기
컴퓨터를 활용한 작업에 관심이 있다면 BrickLink Studio를 이용해 볼 수 있다. 윈도우와 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료 데스크톱 프로그램으로, 가상 레고 브릭을 이용해 작품을 설계하고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다.
직접 만든 모델의 조립 순서를 정리하고 설명서까지 제작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단순히 조립하는 사람에서 다른 사람이 따라 만들 수 있는 작품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는 것이다.
처음부터 거대한 성이나 도시를 만들기보다는 책상, 작은 집, 자동차처럼 크기가 작은 물건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다. 아이가 익숙해지면 실제 보유한 브릭을 기준으로 작품을 설계하고, 디지털 설계를 실제 레고로 옮겨볼 수도 있다.
4. 조립한 작품을 움직이고 싶다면 코딩과 로봇
레고를 조립한 뒤 “이게 실제로 움직이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라면 로봇과 코딩 활동으로 관심을 확장해 볼 수 있다.
레고 에듀케이션 제품은 모터와 센서를 이용해 구조물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작성해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아이가 직접 만든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거나 색상과 거리를 인식하도록 만들 수 있다.
스파이크 프라임을 구매할 때 확인할 점
레고 코딩 제품으로 널리 알려진 제품은 스파이크 프라임(SPIKE Prime)이다. 다만 스파이크 제품군은 2026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판매 종료 단계에 들어갔다.
기존 제품은 계속 사용할 수 있고 스파이크 앱과 관련 자료도 2031년 6월까지 지원될 예정이다. 이미 제품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사용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 새 제품을 구매하려 한다면 향후 소프트웨어 지원 기간과 대회용 제품의 변경 가능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레고 에듀케이션의 ‘Computer Science & AI’ 제품군이 새로운 선택지로 제시되고 있다. 블록형 코딩을 비롯해 파이썬 기반의 텍스트 코딩과 AI 관련 학습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구성된 제품이다.
참고: 레고 에듀케이션 Computer Science & AI
대회와 팀 활동으로 확장하기
혼자 조립하는 것보다 다른 아이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레고 로봇 관련 대회나 팀 프로젝트도 살펴볼 수 있다.
FIRST LEGO League는 아이들이 팀을 이루어 로봇을 설계하고 코딩하며, 매년 제시되는 주제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STEM 프로그램이다. 로봇을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 겨루는 대회라기보다 과제 분석, 역할 분담, 설계, 코딩, 발표가 함께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에 가깝다.
참가 연령과 사용 가능한 장비, 국내 운영 방식은 시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2026년 이후에는 기존 스파이크 기술과 새로운 Computer Science & AI 하드웨어가 함께 활용되는 전환기가 진행되고 있어 참가 전 국내 운영기관의 최신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레고를 잘하면 공간지각 능력이 뛰어난 걸까?
어린 나이에 성인용 레고를 조립하거나 6,000피스 이상의 세트를 완성했다면 복잡한 도면을 이해하고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가는 능력을 보여준 것은 맞다.
하지만 레고를 잘한다는 사실만으로 아이의 지능이나 공간지각 능력을 단정할 수는 없다. 제품에 표시된 권장 연령 역시 지능을 측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조립 난도와 부품 구성, 제품의 주제와 사용 대상을 종합해 제시한 안내에 가깝다.
부모가 살펴봐야 할 것은 제품 상자에 적힌 숫자보다 아이가 조립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행동이다.
- 설명서 속 그림과 실제 구조를 빠르게 연결하는가?
- 부품을 잘못 끼웠을 때 스스로 원인을 찾는가?
- 어려운 구간에서도 다시 시도하는가?
- 완성 후 구조나 기능을 바꿔보려 하는가?
- 자신이 만든 구조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
- 완성품보다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가?
이런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가 대형 조립, 기계 구조, 창작 설계, 코딩 중 어느 방향에 더 관심을 보이는지 알 수 있다.
피스 수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즐기는 방식
아이가 6,020피스짜리 호그와트성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레고와 조립 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다음에는 무조건 7,000피스나 10,000피스 제품을 사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거대한 완성품인지, 조립 과정인지, 움직이는 구조인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일인지에 따라 다음 단계는 달라질 수 있다.
반복적인 조립을 즐긴다면 초대형 세트가 잘 맞을 수 있고, 작동 원리에 관심이 많다면 테크닉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설명서대로 만드는 것이 익숙해졌다면 MOC나 BrickLink Studio를 활용해 창작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면 코딩과 로봇 활동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더 어려운 제품을 계속 제시하는 것보다 아이가 어느 순간에 가장 즐거워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피스를 완성했는지가 아니라, 레고를 통해 아이의 관심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발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