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이면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됩니다.
아직 제 눈에는 어린아이 같지만, 생각해 보면 이제 조금씩 부모의 품 안에 있는 아이에서 자기만의 생각과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부모가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옳고 그른 것을 알려주고, 생활습관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조금 다른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사춘기가 시작되면 아이의 감정이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흔히 호르몬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이 시기에는 호르몬뿐 아니라 뇌 자체가 상당히 큰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사춘기를 앞둔 아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양육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청소년기의 뇌 발달에 대해 찾아본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사춘기는 뇌가 이상해지는 시기가 아니라 다시 만들어지는 시기
청소년기의 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뇌의 신경세포 사이에 수많은 연결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연결은 줄이고, 반복해서 사용하는 연결은 더욱 효율적으로 강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쉽게 말하면 어린 시절에 수많은 작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면, 청소년기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길을 정리하고 자주 다니는 길을 넓혀 나만의 주요 도로망을 만드는 과정인 셈입니다. 동시에 신경 신호를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도록 만드는 변화도 계속됩니다.
그래서 사춘기는 단순히 아이가 예민해지고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 시기가 아니라, 어린이의 뇌가 성인의 뇌로 재편되는 중요한 발달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은 강해지는데 조절 능력은 아직 발달 중
청소년기의 뇌를 이해하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습니다.
감정과 보상에 관계된 뇌의 시스템은 상당히 민감해지는 반면, 판단과 충동 조절, 계획 등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아직 발달 과정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크게 상처받기도 하고, 부모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 아이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이나 재미, 또래의 인정과 같은 보상에도 더욱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흔히 청소년기의 뇌를 두고 액셀러레이터는 강해졌는데 브레이크 시스템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비유하는 이유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앞으로 아이가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항상 좋은 방법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에게 사소한 일이라고 해서 아이에게도 사소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보다 친구가 중요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
사춘기가 되면 부모보다 친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많아집니다.
이 역시 단순한 반항이라기보다는 청소년기 뇌 발달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민감해지고 특히 또래의 인정과 평가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에게 칭찬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면, 성장하면서 친구에게 인정받고 집단에 속하는 경험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인간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어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아이가 친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서운해하기보다는, 어떤 친구를 만나고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부모에게 더 중요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시기
청소년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바로 자아와 정체성의 발달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친구들과 무엇이 다른지 등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외모나 성적, 친구 관계, 자신의 능력에도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잘한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면 이제는 아이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부모 역할은 아이에게 계속 평가를 내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자신을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에 조금 더 가까워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소년기는 위험한 시기인 동시에 엄청난 가능성의 시기
사춘기라고 하면 반항, 충동, 감정 기복 같은 부정적인 모습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뇌 발달 측면에서 보면 청소년기는 오히려 굉장히 많은 가능성을 가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뇌가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신경회로가 발달할 여지가 큽니다.
특히 이 무렵부터 추상적인 사고와 메타인지도 점점 발달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왜 그런지 생각하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보며, 정의나 사회, 사람의 마음, 자신의 삶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나 역사, 철학, 과학, 예술 같은 분야에 깊이 빠져들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이 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성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의 몇 년을 단순히 중학교 공부를 준비하는 기간으로만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뇌 발달을 알고 나니 부모의 역할도 달라 보여
아이의 뇌가 이렇게 변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정리됩니다.
1. 지시하는 부모에서 대화하는 부모로
어릴 때는 부모가 결정해 주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바로 알려주기보다 아이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물어보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것보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고, 그 생각의 이유를 설명해보도록 돕는 것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실수할 기회를 빼앗지 않기
전전두엽은 아직 발달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판단을 부모가 대신해 주는 것보다 안전한 범위 안에서 아이가 직접 선택하고, 때로는 실패하고, 그 결과를 경험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부모가 평생 아이의 브레이크가 되어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조절하는 힘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3. 감정은 인정하되 행동의 기준은 유지하기
사춘기 아이의 감정이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라고 해서 모든 행동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속상할 수 있고 화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까지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감정과 행동을 구분해서 알려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정 자체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가족 안에서 지켜야 할 기준은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4. 아이가 무엇에 몰입하는지 지켜보기
청소년기의 뇌가 자주 사용하는 연결을 강화해 나간다면 이 시기에 어떤 경험을 반복하는지는 꽤 중요할 수 있습니다.
공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책을 깊이 읽고 생각하는 경험, 악기를 연습하는 시간, 운동을 하며 몸을 사용하는 경험, 무언가를 만들고 실패해 보는 경험, 가족과 긴 대화를 나누는 경험, 친구와 갈등을 해결해 보는 경험 모두 아이의 성장 과정에 포함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이의 시간을 얼마나 많은 공부로 채울 것인가보다 어떤 경험을 충분히 반복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인가를 더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5.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관계 만들기
사춘기가 되면 부모보다 친구를 더 찾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전만큼 자세히 하지 않는 순간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때 아이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소 대화를 끊지 않고 아이의 관심사를 존중하면서, 아이가 힘들 때 부모에게 이야기해도 평가받거나 혼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관계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아이를 관리하는 사람에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주는 사람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역할도 계속 바뀌는 것 같습니다.
아기 때는 보호하는 사람이었고, 어린 시절에는 가르쳐주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씩 아이 옆에서 함께 생각해 주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할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 사춘기가 시작되면 저 역시 잔소리도 하고, 답답해하고, 왜 저러나 싶은 날이 많겠지요.
그래도 한 가지는 기억해 두고 싶습니다.
사춘기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 가치관을 가진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뇌와 마음이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몇 년 동안 제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보다, 아이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안전한 울타리와 충분한 경험, 그리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부모도 역할을 바꿔야 한다는 것.
어쩌면 사춘기는 아이에게만 찾아오는 변화가 아니라 부모인 나에게도 함께 찾아오는 성장의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